<CUT/컷>

감독 : 아미르 나데르 (이란)

주연 : 니시지마 히데토시, 토키와 타카코

보면서 참 아픈 영화였다.

주연을 맡았던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거의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장면까지 내내 맞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숨이 턱턱 막힐정도로 잊혀지지 않는 감독의 아픔때문이었다. 그가 표현하고 있는 예술영화에 대한 애정은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러야 이렇게 표현 될 수 있는 것일까. 

꾸준히 고전영화 상영회를 열어가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오던 가난한 독립영화 감독인 슈지(주인공). 어느 날 그에게 낯선 남자들이 찾아오고, 그 사람들은 그의 형이 있던 야쿠자 집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슈지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형에게 빌렸던 돈이 있었는데, 형은 이 돈을 갚지 못해 살해당하고 결국 그 돈은 슈지가 갚아야하는 빚으로 남았다는 상황이었다. 가난한 독립영화감독이 매일 불어나는 이자와 원금을 갚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을 샌드백으로 내모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형이 죽었던 그 자리에서 샌드백이 되어 돈을 번다.

영화의 마지막인 감독이 꼽은 100편의 예술영화와 감독들의 리스트가 슈지가 맞는 장면과 오버랩되는 부분으로 편집되어있는데, 이 부분은 정말 짜증이 날 정도로 아팠다. 마치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윙윙-거리는 기계를 정말 아픈 부분을 콕콕 찌르면서 ‘여기가 아픈 곳이죠? 그쵸?’라는 식으로 놀리는식의(물론 치료의 한 부분이겠지만서도) 기분 나쁜 짜증남. 꼭 이런 방법으로 예술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어야하나. 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것은 예술영화를 찬양하는 방법으로 옳은 표현 방법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거대 자본력의 상징인 스크린쿼터제, 시네마테크가 문을 닫는 현상은 물론이고, 서울을 제외하고는 예술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상영해주는 극장들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점점 더 예술영화는 살아남기 힘들어지겠지만, 예술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극찬을 받았던 아티스트처럼, 예술영화는 존재만으로도 빛을 보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것을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상업영화를 하는 감독들조차 머리를 싸매고 힘들어하는데, 많은 관객들이 보장되지 않는 예술영화를 한다는 감독들은 오죽할까.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다면 관객들의 시선에 맞추는 감독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 영화의 감독이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보다 많은 관객에게 예술영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호소하고 싶었다면, 이 방법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이 모든 점들을 다른 나라의 감독이라서 잘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식의 이유를 붙인다면 ‘그런가?’라고 마무리를 지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소리가 없어도, 대사가 없어도 통하게 되어있다고 믿는다. 

(덧붙이자면 그가 풀어내었던 이야기가 힘들었던만큼, 나도 풀어내기 힘든 리뷰였다. 부족하지만 여기서 마무리. 다시 할 말이 떠오르면 수정해야겠다.)